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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지/창의인재동반사업

썼다 하면 당선, 이은진 교육생을 만나다

http://dream.kocca.or.kr/mentorstory.do?idx=3441



썼다 하면 당선! 인간적인 드라마 작가 이은진 교육생을 만나다

 

시간불문 남녀노소 화면 앞의 우리를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 때로는 지친 인생을 어루만져 주는 그것, 드라마입니다. 길어야 하루 한 시간의 드라마일 뿐인데 TV 앞에 모여 앉아 주인공의 삶을 논하고, 그 인생에 빠져 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드라마 속의 세계는 참 대단합니다.


지난 해 도전한 다섯 번의 공모전 중 두 편이 당선되고, 다른 두 편은 최종 심사까지 갔던 기대되는 신인 작가가 있습니다. 한국방송작가협회의 이은진 교육생입니다. 어느 드라마에서 작가는 까탈지고 예민하다고 묘사했던가요? 웬걸, 이 드라마 작가는 오래 알고 지낸 옆집 언니처럼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드라마를 쓸 수밖에 없다는, 이은진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것일까요?

 



공모전의 신


드라마 공모전은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장으로,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등단을 위한 좋은 기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늘구멍 같은 치열한 경쟁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이은진 교육생은 창의인재 동반사업 기간 동안 <검시관 시금치>(신화창조 프로젝트 스토리 기획개발 공모)<누구를 위하여 콜은 울리나>(2013 단막극 스토리 공모전) 두 편의 대본이 당선되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Q. 공모전에는 지원 경험이 많았나요? 창의인재 동반사업에 지원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4년 정도 드라마 판을 떠나 있었는데, 꼭 세상에 내놓고 싶은 이야기 생겼어요. 이 이야기만 1년 동안 붙들고 매듭을 짓자 하고 공모에 냈는데, 최종까지 가더라고요. ‘되는 이야기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고 공모에 내는 재미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극장이라고 일컬어지는 99칸 판소리 고택 학인당에서 벌어지는 판소리 드라마다. 500억을 주고 황후자리에 오른 대한제국 순정효황후(실존인물, 순종의 계비)다빈치 코드처럼 경복궁의 비밀을 캐는 이야기다. 정말 어마어마한 해법을 갖고 있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주한옥마을의 가장 오래된 고택인 학인당 http://http://from1908.kr/


창의인재사업도 공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어요. 교육 받으면서 자기 작품을 쓰는데 월급까지 받는 게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사업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5개의 공모에 도전했고 그 중 두 개는 당선, 두 개는 최종에서 미끄러졌고, 나머지 하나는 예선에서마저 미끄러졌네요. 시간이 부족해서 울면서 기도하면서 썼어요.


Q. TV 앞에서는 편하게 보는 드라마인데, 울면서 쓰다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요?


창의인재 동반사업 중이니 멘토님 작품에도 참여해야 하는데, 공모를 하려면 내 시간이 또 필요하잖아요. 물리적인 시간은 부족하고, 작업 공간도 변변치 않고, 날은 덥고……. 울면서 썼어요. (웃음) 내 대본에 감동해서 울어야 하는데, 힘들어서 울었어요.


Q. 그런 스트레스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종교가 있어 기도로 극복하는데, 개인적으로 성경 읽는 게 도움이 돼요. 내 마음을 다스리는 건 둘째고, 성경 안에 있는 스토리에 집중하게 되면 그 집중력이 그대로 내 작업으로도 오는 것 같아요.

 


방송국 드라마국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연출 김규태) 중 링거를 맞으며 글을 쓰는 드라마 작가의 모습

 


당선 비결, 다양한 관심사와 풍부한 취재


여러 번의 공모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은진 작가에게도 분명 특유의 강점 내지는 노하우가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창작의 고통과 체력의 한계를 딛고 글을 써내지만, 최종 발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잔인하게도 많지 않으니까요. 이은진 교육생 스스로는 말을 아끼지만, 어느새 빠져들어 다음이 궁금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있노라면, 어서 방송이 편성돼 완성된 그의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단막극 <누구를 위하여 콜은 울리나> (2013 단막극 스토리 공모전 당선작)


이은진 교육생은 한국프로야구위원회가 개최하는 KBO 심판학교 과정을 수료한 야구 심판학교 출신의 작가입니다. 국내 유일일 테지요. 취미로 보던 프로야구의 복잡한 룰을 제대로 알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막상 교육을 받다보니 반짝이는 이야기 거리들이 많이 보였다고요.


실제로 가보니까, 진짜 야구 심판이 되기 위해서 오는 사람은 소수예요. 그보다는 어떤 이유에서 왔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어요. 각자의 사연이 있는 거죠. 지적 장애인도 있었고, 찜질방에서 숙식하면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도대체 야구가 뭐 길래,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걸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야구의 매력에 더 빠지게 되고, 글을 등한시하고... (웃음)”

 

추운 겨울 링거까지 맞아가며 심판학교의 훈련을 마친 이듬해, 프로야구 심판원들의 일상을 좇아 일주일간 지방 출장까지 밀착 취재해 만들어진 작품이 당선작 <누구를 위하여 콜은 울리나>입니다. “프로야구 심판원 이야기는 일드에도 미드에도 없더라는데요.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가기 전까지는 글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 프로야구에 푹 빠져 있었다지만, 그 야구에 자신의 메시지를 얹어 신선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올해 편성을 받게 될 이 작품은 평등과 차별, 공정과 꼼수 등 우리 사회에 공의와 공정한 경쟁에 대한 메시지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즌제 수사물 <검시관 시금치> (신화창조 프로젝트 스토리 기획개발 공모 당선작)


벌레보다 못한 세상을 벌레를 통해 해부한다<검시관 시금치>파리로 범인 잡는 법곤충감식반 7급 공무원 경찰의 이야기랍니다. 국과수 안에서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관과는 다르게 직접 현장에 나가는 경찰청 검시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생생한 르포가 될 텐데요. 35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생존해온 곤충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후 72시간이 경과한 경우 부검만으로는 사인을 밝히기 어려운데, 사체의 부패에 관여하는 생물의 85%가 곤충이라는 점에 주목한 수사물이다. 인간이 곤충에 대해 원초적으로 갖는 흥미의 원인을 찾다가 곤충에 굉장한 마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메뚜기는 뒷다리의 레슬린때문에 2.6m를 도약할 수 있다. 뇌보다 다리가 빠른 길앞잡이는 시속 1000km로 걷는다. 거미는 2000개의 실관을 갖고 있고 거미줄은 1000배의 무게를 지탱한다. 그 모든 능력을 인간이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그가 읊는 곤충의 마력들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곤충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꼼꼼한 취재와 엄청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매력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대본 작업 중에 있지만, 방송사 PD로부터 관심을 받는 등 조만간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 있을 기대작입니다.





인복(人福), 그들에게서 배운 드라마 작가의 사명


직접 만나 느낀 이은진 교육생의 이런 들은 물론 저절로 생긴 것들이 아닙니다. 링거 투혼을 불사하는 노력, 인간과 시대적 조류에 대한 관심, 꼼꼼한 취재력은 드라마에 처음 발을 들일 때부터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이은진 교육생이 드라마 보조작가로서 처음 만난 어미새같은 존재가 <미스코리아>의 서숙향 작가와 <사랑해서 남주나>의 최현경 작가입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몇 년 간 드라마를 떠나 있었던 이은진 교육생이지만, 그가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 되고 싶은 작가의 모습은 이미 걸음마를 뗐던 7년 전에 정해졌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On Air인 이은진 작가님의 정신적 멘토님들. (왼쪽) <파스타>, <골든타임>, <미스코리아> 등 연이어 히트작을 집필하고 있는 서숙향 작가, (오른쪽) 단막극 <못난이 송편>으로 제46회 휴스턴국제영화제 드라마스페셜 부문 대상, 아시아TV어워즈 최우수상을 수상한 최현경 작가. 시청률 지향적인 자극적 소재가 판을 치지만, 두 작가님들은 잔잔하고 깊이 있는 웰메이드 드라마를 써오셨습니다.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인정받고 계시죠. 사진제공: MBC



취재를 꼼꼼히 하는 건 서숙향 작가님에게서 배웠어요. 100개를 취재해서 드라마에는 5개밖에 못 싣는다고 해도 100개를 취재하세요. 재미와 감동만 있으면 되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이 시대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데서 오는 감탄이라고 생각해요. 학습과 감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무엇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25년 동안 롱런하고 계신 최현경 작가님을 떠올리면 그렇거든요. 배려와 성실함이 그 조건인 것 같고, 대단히 존경스러워요. 내 인격, 내가 세계를 보는 방식, 내가 던지는 질문들이 대본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성숙한 나를 만들어가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은진 교육생이 생각하는 드라마의 사명은 위로입니다. 그가 드라마를 쓰는 이유는 시청률이 대박 나서 돈을 벌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매니아 층을 만들어 오랫동안 회자되고 싶은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큰 돈 내지 않고, 긴 시간 들이지 않고 재밌는 드라마 볼 수 있는 재미를 사람들에게서 빼앗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직장인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노인들, 애들 재우고 자유를 누리고픈 엄마들, 학업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학생들에게 가장 쉽고 가까운 위로가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동생이 애 엄마가 되고, 엄마가 환갑 넘은 노년이 되셨어요.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드라마가 그들의 삶에 유일한 낙이 되고 있더라고요. 그게 드라마의 매력이고, 동시에 의무라고 생각해요.”



현실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정이 그만큼 우리의 이상향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은진 교육생인복이 좋다고 감사해하면서 멘토들에게서 배워온 그의 다짐을 듣자니, 인복도 그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가꿔온, 또 가꿔갈 이은진 작가이기에 좋은 드라마를 써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웰메이드 작가에게서 탄생할 웰메이드 작품들이 곧 우리를 위로해줄 것입니다.



류현진 선수가 한화 이글스에서 7년 동안 98승을 했는데, 그 중 81을 신경현 포수와 호흡을 맞췄다. 류현진 선수의 공을 가장 잘 쳐냈던 선수는 이대호 타자다. 류현진과 이대호, 둘의 싸인이 함께 들어있는 신경현 선수의 배트를 나는 갖고 있다. 승부는 투수, 포수, 타자가 함께 있지 않으면 긴박감과 짜릿함도 없다. 내 드라마도 감독과 배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과 함께가 아니면 그저 철자 모아둔 것에 불과한 게 대본 아니겠는가. 최선의 대본을 내기 위해서 노력하며 감독과 배우를 기다린다. - 이은진 작가

 

 

한국경제신문

인터뷰 정주원 | 사진 이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