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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K 윤기호 멘토팀 ① 한 울타리 안 네 사람, ‘또 하나의 가족’이 되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의 윤기호 멘토님과 신재형, 이시현, 조현경 작가 교육생 분들을 만나기로 한 날, 기쁜 소식을 먼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열린 ‘2013 스토리 공모대전’ 시상식에서 윤기호 피디님의 <서흔남>이 우수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게다가, 윤 피디님이 제작하신 영화 <또 하나의 약속>(감독 김태윤)이 개봉 일정을 2월 초로 확정지었다는 소식도 반가웠는데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로 근무하다 2005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실화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민감할 수 있는, 그러나 알아야하고 알려야하는 소재를 과감하게 스크린으로 옮긴 <또 하나의 약속>. 재미와 사회성을 한번에 잡았다는 이 ‘문제작’을 제작한 윤 피디님은 어떤 강단이 있는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정작 본인은 멋쩍어 하시며 “나 같은 사람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하시지만요. 또 이런 윤 피디님을 멘토로 선택한 신재형, 이시현, 조현경 교육생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독특한 점은 멘토님과 교육생들이 모두 동년배라는 사실입니다. 스승과 제자보다는, 동료 혹은 친구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이들입니다.
①에서는 윤기호 피디님의 이야기를, ②에서는 신재형, 이시현, 조현경 작가 교육생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윤기호 프로듀서 | PGK 창의인재사업 멘토
윤기호 피디님은 경력 5년의 ‘젊은’ 프로듀서이십니다. 군 제대를 하자마자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감독 류승완)의 제작부 막내로 투입돼 영화판에 발을 들였던 스물네 살 이후로는 13년이 지났고요. 어릴 적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국문학과에 진학했는데, 스스로 ‘작가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판단이 섰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국문학과에 이웃한 연극영화과와도 교류를 하면서 ‘혼자 골방에 앉아 글을 쓰는 것’보다 ‘사람들과 호흡하는 일’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드셨다고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면서 영화 제작 전체를 조율하며 사람들을 상대하는 영화 프로듀서가 그때부터 꿈이 됐습니다. 지금도 그 꿈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요.
윤 피디님의 최근 제작 작품으로는 <페이스 메이커>(김달중 연출), <친정엄마>(연출 유성엽) 등이 있습니다. 따뜻한 감성을 가진 휴먼 드라마,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게 단번에 느껴지는데요. 특히 앞서 말한 <또 하나의 약속>은 그 정점에 다다른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윤 피디님께는 사회적인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에 대한 어떤 철학이 있으신 걸까요?
윤기호 피디님이 스태프 및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해 오신 작품들 중 일부
윤기호: 제가 사회성이 있고 따뜻한 영화만을 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확인해보니까 정말 ‘루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더라고요. 제 관점 때문인 것 같은데, 저는 성공한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증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거죠. 1인자가 아닌 2인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것들이요.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이라도, 내가 피디로서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느끼는 지점이 없다면 그 작품은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작품을 왜 만들어야 되느냐가 스스로에게 납득이 돼야 글을 쓰거나 기획할 수 있고, 혹은 제작을 의뢰 받았을 때 ‘제가 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 작품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가’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죠.
메뚜기도 한 철이다?
그래서 특정 장르의 영화가 아니라,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윤 피디님은 정말이지 바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듯했습니다. 영화 일을 시작하고 10여 년 동안 명절을 제대로 챙겨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만 해도 <또 하나의 약속>에, <서흔남> 기획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요. ‘프로듀서’라는 타이틀도, 여러 작품의 필모그래피도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 더욱 눈에 띄는데요. 도대체 어떤 동력이 멘토님을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걸까요?
윤기호: 류승완 감독님이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해야죠. (웃음)
사실 그런 것보다도, 늘 하는 말이지만 ‘인복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저 혼자 하면 못할 것 같은데,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고요. 주위에 있는 좋은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 주었던 것도 운이 좋았죠. 영화판에는 어떤 자격증이 있는 게 아니니까 ‘이 사람이 일을 잘 하는 구나’라는 것은 내 옆의 사람이 알아봐 줘야 하거든요. 누군가 내 능력을 알아주면 나도 그 영역에서 함께 일할 수 있게 되는 거고요. 동료들 덕분이죠.
윤기호 피디님은 호러, 섹스코미디 등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들은 다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영화를 만들고 싶고, 만들어가겠지만 ‘진실된 이야기’만 있다면, 이야기가 가진 의도와 감정이 명확하다면 좋은 영화의 자질을 갖춘 것이지요.
어려웠던, 그러나 이뤄낸 기적, <또 하나의 약속>
오는 2월 6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그런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제작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과 노동자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어 투자사나 기관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이 택한 길은 ‘제작두레’(http://anotherfam.com/). 제작두레는 상업성이 짙은 기존 영화 자본이 투자를 꺼리는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작품들에, 모금을 통해 관객들이 직접 제작 금액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윤기호: 일반적인 상업영화에는 2~3개의 창투사나 투자자들이 돈을 대요. 이들의 힘으로 광고를 내고 극장을 잡고요. 이 영화는 그런 투자자가 없는 대신, 현재까지 7천 명 정도의 제작두레 여러분이 모아준 10억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거니까, 7천 명의 투자자가 있는 셈이죠. 그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제작두레 시사회를 열 예정이에요. 연말연시라 멀티플렉스 극장을 대관하는 것도 어렵게 돼서, 수천 명이 모이는 특별한 시사회를 생각하고 있어요.
12월 15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또 하나의 약속> 기적의 3만 전국 릴레이 시사회가 열려 4000여 명의 두레 회원들이 관객으로 참석했다. 사진제공: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인터뷰가 있은 지 며칠 뒤, ‘기적의 3만 전국 릴레이 시사회’가 시작됐습니다. 4천여 명이 모인 12월 15일 서울을 시작으로, 대전과 대구에서도 시사회가 성공적으로 열렸습니다. 윤기호 피디님은 <또 하나의 약속> 제작두레 홈페이지에 “저희는 새롭게 해보려 합니다. 언제는 길이 있었습니까? 길이 없다면 새로 길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끝까지 제작두레 회원들과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보통 시사회가 100~20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열리는데, 릴레이 시사회는 그 규모만으로도 감동적인 이벤트이자 마케팅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적인 영화 제작을 가능케 한 윤 피디님이지만, 처음에는 고민이 따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윤 피디님은 처음 김태윤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제안 받았을 때는 거절했지만, 이내 ‘이 작품은 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윤기호: 사실 처음 제안을 받고 거절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저희 회사(에이트볼픽쳐스)는 상업영화 제작사고, 전 작품 <페이스 메이커>가 흥행하지 못해 어려운 상황이었고, 진행 중인 다른 프로젝트도 있었고……. 솔직히 ‘이렇게 작은 영화를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결국 참여하게 된 계기는 ‘대본의 힘’이었죠. 대본을 봤을 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을 하고 난 뒤에 나에게 올 후폭풍이 두렵다는 이유로 거절한다면, 앞으로 제가 영화를 할 때도 한계에 부딪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영화 자체가 마음에 드는데 거절하기에는 제 자신을 설득할 명분이 없었죠. 사람들이 다 어렵다고 얘기했지만, 안 해봤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달려가 보면 주위에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셨고, 그게 힘이 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윤 피디님의 이야기를 들은 신재형 교육생은 “피디님을 만나기 전에 제작두레 이야기를 듣고 ‘이 영화 참 힘들텐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결국 밀어붙이시는 걸 보고 그 추진력에 반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끝끝내 약속을 지켜낸 이 영화의 의미가 더 큽니다. 윤기호 피디님에게는 이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윤기호: 초심을 다잡게 해준 영화에요. 처음 영화판에 들어올 때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10여 년 동안 영화 자체가 제 업이 되다 보니까, 이야기보다 상업성을 먼저 생각하게 됐어요. “이 영화 흥행할 테니까 해보자” 같은 거요. <또 하나의 약속>을 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어요.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또 하나의 약속>의 윤기호 프로듀서’라고 하면 착하고, 예의 바를 것 같이 보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항상 인터뷰를 할 때도 “저 같은 사람도 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얘기를 해요. (웃음)
<또 하나의 약속>은 특정 기업을 공격하기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한 약속을 지켜내는 이야기, 상식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딸을 잃고 홀로 싸우신 실화의 주인공 황상기 아버님이 '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하셨던 부탁을 지켜낸 약속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누구를 지지하든, 무엇에 찬성하고 반대하든, 모두가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로 새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줄 것 같네요.
또 하나의 가족, 에이트볼픽쳐스 식구들
윤기호 멘토팀의 멘토는 윤기호 피디님 한 명이 아닙니다. 윤기호 피디님과 작가 교육생 분들의 울타리, ‘(주)에이트볼픽쳐스’가 멘토입니다. 에이트볼픽쳐스는 <혈의 누>의 이원재 작가님과 <후궁>의 박성일 피디님, <은교>의 이상현 피디님, 윤기호 피디님 등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 만든 회사입니다. “네 명이 7년 정도 같이 크리스마스이브 보내니까 회사 차리게 되더라고요. 촬영장에서 막내로 고생할 때부터 친했던 사이에요.”
‘멘토님들’과 교육생 분들 모두 돈독한 울타리 안에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세 분의 작가님들과 윤기호 피디님, 그리고 에이트볼픽쳐스의 인연들 모두, ‘또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인데요. 친구 같은, 가족 같은, 멘토와 교육생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한국경제신문
글 정주원 | 사진 이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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