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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지/창의인재동반사업

다큐의 힘 보여준 EIDF 2013, 방콘진 <오백 년의 약속> 시청자관객상 수상

 

다큐의 힘 보여준 EIDF 2013, 방콘진 <오백 년의 약속> 시청자관객상 수상

 

 

홍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소소한 파티가 열렸습니다. 제10회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시상식이 있기 하루 전 날, 방송콘텐츠진흥재단(방콘진, BCPF)의 송규학 멘토님이 프로듀서를 맡은 <오백 년의 약속>(연출 안재민)의 상영과 경쟁 부문 노미네이트를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독립 다큐멘터리 PD들이 소속돼 있는 ‘창작집단 917’ 식구들과 방콘진 교육생들, <오백 년의 약속> 스태프들이 모여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진: 안재민 감독님(왼쪽)과 이야기를 듣고 있는 황혜온 교육생(방콘진 송규학 멘토님)

 

이 훈훈했던 분위기 덕분일까요. 다음날 시상식에서 <오백 년의 약속>은 시청자·관객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시상식 후 만난 안재민 감독님은 “정말 생각을 못했고, 기대도 안했다.”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이셨는데요. EIDF 2013과, <오백 년의 약속>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하루 평균 8시간 반 TV에서 보는 다큐멘터리 영화, EIDF 2013

 

10월 19일부터 25일까지, 23개국 5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EBS TV채널과 전용 영화관에서 상영됐습니다. 2004년 제1회를 시작으로 어느덧 열 돌을 맞이한 EIDF는 축제기간 동안 정규편성 프로그램 대신 엄선된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상영해 왔습니다. 54편의 작품들은 장르, 감독 별로 섹션이 나뉘었는데, 경쟁 부문인 ‘페스티벌 초이스’에는 11개의 작품이 선정됐습니다. 이 중 제10회 EIDF의 주제인 ‘진실(Truth: Let It Be Heard)’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 대상의 영예와 미화 10,000달러의 상금을 거머쥐었습니다. 그 외에도 시청자·관객상, 다큐멘터리정신상 등 4개 분야에서 시상이 이뤄졌습니다.

 

사진(오른쪽): <전선으로 가는 길>의 스틸컷. 영화의 주인공인 종군기자 팀 헤더링턴

 

25일 열린 시상식에서 대상은 세바스찬 융거(Sebastian Junger) 감독의 <전선으로 가는 길>이 차지했습니다. 세계 분쟁지역에서 사진과 영상을 남긴 종군기자 팀 헤더링턴(Tim Hetherington)의 삶을 담은 작품으로, 심사위원단으로부터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위대한 휴머니티를 완성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세바스찬 융거 감독의 “전쟁의 진실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내 동료를 잃게 된다는 확실성에 있다”라는 말과 함께, 저널리스트이자 인도주의자이며 모든 상황의 ‘참여자’였던 팀의 삶과 죽음이 깊숙이 다가오는 작품이었습니다.

 

 

방콘진 지원작 특별전 상영과 시청자관객상 쾌거

 

방콘진에서는 그린다큐멘터리 제작지원, EIDF와 공동 사전제작지원 등을 통해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제10회 EIDF에서는 ‘한국 다큐멘터리 파노라마: BCPF 특별전(한국다큐 특별전)’이 마련돼 한국 다큐멘터리의 저력도 보여줬습니다.

 

페스티벌 초이스 작품 중 유일한 한국 작품이었던 <오백 년의 약속>은 시청자·관객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를 직접 본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큰 상입니다. 시상식 후, 안 감독님은 “외국 작품이나 정치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에 비해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서, 한국인의 정서에도 맞고 공감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오백 년의 약속>은 공식 행사가 마무리된 뒤, 러시아 국영방송사 블라디보스토크 TV가 준비한 ‘Heart of Soul’상도 수상해 2관왕에 올랐습니다. 예브게니 올레네프(Evgenii Olenev) 부사장이 직접 안재민 감독님에게 시상해주셨는데, 예상치 못했던 상이라 더 기쁜 상이었습니다.

 

사진: EIDF 2013 시상식에 참석한 송규학 멘토님(왼쪽)과 안재민 감독님

 

송규학 피디님은 수상에 기뻐하면서도, “올해 ‘한국다큐 특별전’에 상영된 <내일도 꼭, 엉클 조>(연출 최우영·하시내)나 <강선장>(연출 원호연) 같은 작품들도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저희 작품만 경쟁 부문에 올라 다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시며, 다른 한국 다큐멘터리 작품들에 대한 관심도 당부하셨습니다.

 

 

다큐멘터리 <오백 년의 약속>

 

세계의 다큐멘터리가 모이는 EIDF에서 당당히 경쟁 부문에 올라 수상의 쾌거까지 이룬 <오백 년의 약속>!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오백 년의 약속>은 안동의 예안이씨 충효당파 16대 종부 권기선 씨와 그의 아들, 17대 종손 이준교 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샌 70세의 아들이 95세의 노모를 보살피는 모습을 담담한 시선에서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냈습니다. 안 감독님은 “어떤 연출을 하거나 뭔가를 끄집어낸다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고, 묵묵히 두 분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안재민 감독의 <오백 년의 약속>”이 호명됐을 때, 안 감독님은 얼떨떨한 와중에도 수상소감에서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인 이성규 감독님(방콘진 멘토)을 언급해 감사를 전하셨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은 KBS 추석특집 프로그램으로 <종가, 500년의 초대>(연출 이성규)라는 다큐를 촬영하던 중, 예안이씨 집안을 중심으로 안재민 감독이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기분 좋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최초 기획자였던 이성규 감독은 지금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그분에게 힘이 되는 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영화를 사랑해주신 관객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다큐멘터리 <오백 년의 약속>이 가진 힘, 공감과 치유

 

<오백 년의 약속>이 처음으로 상영되던 날, 다큐의 주인공인 이준교 씨와 그 가족들도 직접 자리해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셨습니다. 송 피디님은 “가족 분들이 참석해 주신 점이 가장 뜻 깊고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처음에는 촬영에 반대했던 가족들도 영화를 본 뒤에는 “반대했던 것에 미안하고, 영화를 잘 만들어줘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답니다. “다큐멘터리작업을 계속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의 보람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관객, 피사체, 제작진 모두를 치유하는 게 바로 다큐멘터리의 힘이에요.”

 

 

이 작품의 힘은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에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담을 수 있는 종가, 그 중에서도 보물 제533호인 예안이씨 충효당을 배경으로 하지만, 러닝타임 52분 동안 이런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거의 배제돼 있습니다. 그 덕분에 보는 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하게 되고, 어느새 나의 부모님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송규학 피디님도 “이분들은 우리를 바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촬영감독 세 명과 안 감독까지 다 같이 안동에 내려갔다 온 적이 있는데,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차 안을 보니까 다들 전화기를 붙들고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안재민 감독님도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돌아가실 때 부모님께 전화 한 통씩 하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촬영 때마다 항상 그랬습니다. 남다를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큐가 가진 공감의 힘, 스크린 속 두 어르신이 보여주신 삶과 정신이 이 작품을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저릿하게 다가옵니다.

 

500년을 흘러온 이야기, To be continued

 

<오백 년의 약속>은 아직 가시화되진 않았지만, 국내 개봉과 유럽 진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특히 11월 20일부터 열리는 제26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을 통해 유럽시장의 문도 본격적으로 두드리게 됩니다. 송 피디님은 “저희 작품이 유럽에서 많이 방송돼서, 우리의 ‘효(孝)’사상이 널리 알려지고 정신적 한류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백 년의 약속> 영화판은 공개됐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안재민 감독님은 앞으로도 이준교 씨의 이야기를 촬영해, 완성된 ‘예안이씨 충효당파’의 이야기를 만들 계획이라고 하십니다. 3년 정도를 내다보고 계시다고 하는데요. 완성된 다큐멘터리를 만날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또 한 번 우리들의 가슴을 울릴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사진: EIDF 2013 시상식에 참석한 내빈과 심사위원단, 경쟁부문 감독들

 

풍성한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던 제10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플랫폼기관 중 하나인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의 제작지원작들도 있었기에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엔 송규학 멘토님의 작품이 좋은 성과를 내 더욱 뿌듯한 축제였지요. 이제 축제는 막을 내리고 내년을 기약했지만, 여러분들도 EIDF의 좋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접하고 깊은 공감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경제신문 글 정주원 인턴기자 | 사진 유경선, 정주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