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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고릴라 '링링'이 남긴 것 <미스터고> 사례분석
<미스터 고 3D> 메이킹 영상 http://www.mrgo.co.kr/
“모두가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미스터 고 3D>를 말한다. 그동안 <킹콩> <혹성탈출> 등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유인원 캐릭터를 한국영화의 주연배우로 만나게 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 2013.1.15. 《씨네21》 "고릴라에게 올인한다" 중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었다. 1월, 《씨네21》이 2013년 기대작으로 <미스터 고>를 꼽으며 김용화 감독 인터뷰 기사를 냈을 때만 해도 말이다. 많은 이들이 '헐리우드급' CGI와 3D 영상을 선보일 <미스터 고>와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을 손꼽아 기다렸다. 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영상만으로 영화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영화. 그러나 7월, 드디어 그 베일이 벗겨졌지만, 링링은 그리 많은 관객을 만나지는 못했다. 아니, 이 비싸고 환상적인 주연배우가 관객들에게 외면당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크리톡 4강이 ‘<미스터 고>, 3D 영화 기획 및 기술 사례분석’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미스터 고>의 프로듀서이자 PGK 멘토인 정주균 피디가 강단에 섰다. 특히 이날 강의는 창의인재 교육생뿐 아니라 PGK 소속 영화 피디들이 참석해 들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영화 제작 과정의 모든 것이라 해도 좋을 만한 강의 내용과 기대에 못 미쳤던 흥행 성적에 대한 솔직한 원인 분석까지, 3년간의 여정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슈퍼스타 고릴라 ‘링링’의 탄생, ‘감금’ 끝에 가능했다?
<미스터 고>는 그 홍보 문구처럼 정말 ‘세상에 없던 특별한’ 이야기다. 메가폰을 잡은 김용화 감독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연출을 극구 거절한 바 있다고. 고릴라가 프로 야구 선수가 되고 인간과 교감한다니,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정주균 피디는 “소재 자체가 엉뚱하다 보니 출발부터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고릴라를 구현할 것인가가 제일 처음 들이닥친 과제였다”며 영화 기획개발 당시를 회상했다. 제작진은 극을 이끌어가는 고릴라를 어색하지 않고 감정이입이 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정 피디는 “국내 인력만으로 수준급 VFX*와 3D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스태프들의 ‘감금’으로 얻어진 노하우와 질적 성장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촬영팀은 직접 구입한 3D 촬영 카메라를 연구하며 3D 촬영 기술을 완벽히 이해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애니메이터들과 VFX 팀은 고릴라의 손 지문 등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묘사해냈다. 특히 난제였던 고릴라의 ‘털’은 지난한 연구 끝에 내부 R&D 팀이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구현할 수 있었다. 오죽 힘든 과정이었으면, 김용화 감독과 친분이 있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링링도 등판하기 전에 털을 직접 깎아버리면 어떻겠냐”는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이다.
또 하나, <미스터 고>의 현장은 체력적 부담도 남달랐다. 3D 영화는 인간의 두 눈으로 보는 효과를 내기 위해 두 대의 카메라를 연결한 리그카메라로 촬영한다. 문제는 이 리그카메라의 무게가 40kg에 달한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직접 들고 뛰는 스태프는 한 달 동안 ‘감금’ 체육 훈련을 통해, 지금은 아마 ‘국내에서 가장 튼실한 스태프’가 됐다고. 일반 영화 현장에서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테크노크레인이 영화 촬영 전반에 필요해, 테크노크레인 스태프들도 유례없이 힘든 현장을 경험해야 했다. 이런 촬영 과정을 거쳐 생생한 디지털 캐릭터와 현장이 스크린 위에 펼쳐질 수 있었다.
* VFX: Visual FX의 줄임말, 시각적 특수효과. 실제 존재하지 않거나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 등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기법 혹은 그 결과물을 말한다. 최근에는 컴퓨터로 제작한 영상인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와 혼용되고 있다.
<미스터 고>가 이끈 한국 영화계의 진일보, 기술과 중국 시장
<미스터 고> 제작을 위해 모인 팀들은 1~2년 동안 오로지 이 영화에만 몰두했다. 제작진은 주인공 고릴라의 퀄리티를 위해 이 작업에만 ‘올인’할 수 있는 팀을 원했고, 제작사 덱스터 필름은 덱스터 스튜디오(덱스터 워크숍, 덱스터 디지털 등)라는 새로운 둥지를 만들어주었다. 정 피디는 “이 분야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노하우를 쌓았는데, 영화가 끝나면 스태프들과 기술이 흩어지게 되는 게 아쉬웠다”며, “<미스터 고> 이후로 한국에서도 3D 영화가 많이 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고 회사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아시아 최고의 3D팀’이라는 포부를 내걸 만도 했던 것이, 영화의 1800컷 중 CG가 없는 장면은 한두 컷에 불과하다. 기존의 회사 환경에서는 우수 인력들이라도 여러 작품을 수주해 기계적으로 일을 해야 했던 반면, <미스터 고>의 스태프들은 영화의 플롯과 진행 상황을 이해하면서 오랫동안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자연히 스태프들 개개인의 역량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미스터 고>의 도전은, 중국 자본을 투자 받아 한-중의 영화 시장을 공유하는 합작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한국의 연간 영화 관객 수가 아직 2억 명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은 연간 평균 영화 관객 수가 4억 7천여 명에 달한다. 급속한 성장세에 있는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은 한국 영화산업에서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미스터 고>는 중국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 화이브라더스에서 500만 달러 투자를 받고, 공동으로 제작됐다. 중국 내에서 김용화 감독의 전작 <미녀는 괴로워>가 큰 인기를 끈 바 있어 투자를 받기가 수월했다. 중국 영화시장은 양질의 콘텐츠를 필요로 하고, 한국 영화계는 제작비와 큰 중국 시장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정 피디는 “<미스터 고>가 한국과 중국 사이에 다리를 놨다”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중국의 영화적 교류가 많아지고 우리가 중국 시장을 나눠가질 수 있는 경향이 확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 실패했을까?’ 그리고 다음을 위한 발판
놀라운 기술과 최신 장비들로 충무로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스터 고>. 그러나 정주균 피디가 공개한 영화의 흥행 성적은 ‘참패’에 가까웠다. 2013년 7월 17일에 개봉해 첫 주 관객 83만 명을 동원하고는, 다음 주엔 40만, 8만, 1만 명으로 뚝뚝 떨어져 총 관객 수 132만 명에 그쳤다. 기획 단계에서는 1천만 관객을 바라봤지만, 3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이고 40억 원만이 회수된 실정이다.
정 피디는 크리톡 자리에서 “왜 실패했을까요?”라며 공개적으로 화두를 던졌다. 교육생들과 피디들은 △타깃 관객층의 모호함 △한국에서 흥행하기 어렵다는 두 소재(‘동물’과 ‘야구’)의 조합 △드라마적 요소의 부족 △고릴라를 채찍으로 대할 때의 불편함 등을 지적했다. 정 피디도 해당 부분들을 수긍했다.
특히 제작진 입장에서는 ‘기술에의 함몰’이 문제였다고 자평했다. 3년 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기술에 함몰되지 말자”는 것이었을 만큼 이를 경계했지만, 사실은 이미 기술에 함몰돼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감정을 놓쳤다는 것이다. 정 피디는 “상상했던 것보다 링링의 모습이 정말 잘 나왔고, 그것에 만족해 고릴라에만 너무 감정이입해 있었다”고 말했다.
정 피디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기획의 실패’도 언급했다. 그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보고 싶어 하지 않고 궁금해 하지 않는 영화를 만든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기획 초기에 지인들에게 영화 줄거리를 설명했을 때 호감이나 호기심을 보인 이들이 거의 없었단다. 또 실제로 영화 개봉 전후의 극장 유동 관객 수를 보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설국열차>나 <더 테러 라이브> 등의 화제작이 개봉할 즈음에는 극장을 찾는 관객이 급증했지만, <미스터 고>의 개봉 전후는 변동 폭이 매우 적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 자체가 낮았던 것을 방증했다.
강의를 들은 김수한나 교육생은 “강연 중에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영화’라는 말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단순한 한 마디라도, 영화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김 교육생은 “내가 좋게 생각한다고 꼭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면서, “그 사실이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꼭 기억해야 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PGK 교육생 중 3D 촬영에 관련한 내용을 이전에 접할 기회가 있었던 최수혁 교육생은 “유익한 강의였다. 제작비가 적은 환경의 3D 제작과 비교해 기술적인 부분에서 궁금한 점이 많다. 뒤풀이 자리에서 피디님께 많이 여쭤보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화에서처럼 시원한 홈런을 터트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스터 고>가 ‘맨땅에 헤딩’으로 쌓아 올린 향상된 기술 수준과 중국 시장으로의 교두보는 한국 영화산업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정주균 피디는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한국영화의 기획 범위도 확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스터 고>에서 제작진이 얻은 교훈은 컸다. 정주균 피디와 그가 소속된 제작사 덱스터 스튜디오는 다음 번에도 디지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기획과 시나리오 작업이 많은 교육생들에게 “이제는 ‘이건 안 될 거야’라는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뤄진 분석들이 교육생들에게도 큰 귀감이 됐을 자리였다.
한국경제신문 정주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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