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라지던 기억이 아쉽던 때가 있었다.
왜 하필 오늘, 오랜만에 헤어졌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고 나도 문득 그를 떠올렸던 오늘에 이 영화를 보게 됐는지 우습기도 하다.
처음 영화를 알게 된 건 재작년 영화의 이해 수업 때, 아마 컷이든가 뭔가를 배우면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게 됐다.
기억이 지워진 뒤 몬타우크 해변에서 (다시) 만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조엘의 집으로 가면서,
클레멘타인 앞으로 온, 기억을 지우기 전 클레멘타인의 음성이 담긴 테잎을 듣는 장면부터 끝부분까지였다.
당시엔 그냥 파란 머리의 케이트윈슬렛이 낯설어 이런 영화도 있구나 싶었고, 기억을 지웠는데도 다시 만나는 연인 이야기라는 교수님의 짤막한 줄거리 설명에 나중에 한 번 봐야겠다 싶어서 구해놨더랬다.
매번 봐야지봐야지 하다가, 할 일이 쌓여있어 딴 짓을 찾게 되는 오늘 같은 날, 결국 보게 됐다.
사라지는 기억들을 잡으려는, 필사적으로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도망치는 조엘의 모습이 눈물겨웠다.
잊고 싶지만 잊고 싶지 않은 그 기억들..
- It'll be different, if we can give just another go-around.
- Remember me, and try the best. maybe we can.
그 기억을 아무 생각 없이 놀며 즐기며 떠들며 지워대는 technician 친구들이 얄밉기도 했고.
제발 지우지 말아달라고 소리치는 조엘을 보며 마음 아팠다.... 비단 La어쩌구 회사에 찾아가지 않더라도 기억은 옅어지게 마련이니....
기억이 사라지면서 연결되는 혼란스러운 영상들, 갑작스러운 연결 등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재미있었다.
어떤 장면들에선 다시 돌려서 연결 부분만 반복해서 볼 정도로 신기하기도 했고!
사람의 뇌 속을 다니면서 기억을 거꾸로 되짚어 올라간다는 플롯도 적절했다.
내용적으로도 다투고 싸우고 헤어진 장면에서부터 행복했던 사랑스러웠던 시절로, 처음 만나 데이트 신청하던 풋풋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니 안타까움이 배가되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극 중에서 반전의 열쇠와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메리가 읊은 알렉산더 포프의 시,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e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ed
사라지는 기억에 순순히 enjoy it 해버리는 몬타우크 해변의 조엘과 클레멘타인..
- Come back and make a good-bye at least. Let's pretend we have one.
Bye Joel.
- I love you..
- Meet me... in Montauu..k.........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어놓고 헤어질 땐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들만 하게 되는구나.
서로에게 심한 말을 하던 기억에서부터 다시 풋풋하고 사랑에 빠진 시절로 돌아온 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기억을 지우기 직전에 남긴 테잎이 재생된다. 서로에 대해 온갖 불신과 미움과 질린 감정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땐 나중에야 어찌됐든 감정에 충실하게 다시 가면 된다. 마음이 남아있으니.
그들이 간직한 모든 추억과 사랑이 다 기억 속에서 사라졌는데도
다시 같은 장소에서 만나 비슷하게 끌리고 마음이 끌릴 수 있다니.
정말 기억이 사라져도 마음은 남아 있는 걸까?
어쩌면 기억이 사라져서 마음이 살아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헤어지는 순간 서로에게 낸 생채기, 그 때의 나쁜 감정들도 지울 수 있으니.. 좋은 기억부터 살려내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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