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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지/창의인재동반사업

[전윤찬 멘토팀 ①] 전윤찬 피디에게 ‘창의 교육’을 묻다

 

http://dream.kocca.or.kr/mentorstory.do?idx=2481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_전윤찬 멘토팀 ①] 전윤찬 피디에게 ‘창의 교육’을 묻다


 ‘영화사 통’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 향이 감돌았다. 평소 술보다 커피를 즐기는 대표, 전윤찬 피디 덕분이다. 전윤찬 피디는 9년 전 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을 시작으로, <내 청춘에게 고함>, <풍산개>, <피에타> 등의 프로듀서를 맡으며 ‘저예산 영화’ 제작자로서 입지를 굳혀왔다.


후배들에게는 자신이 느꼈던 설움을 절반으로 줄여주고 싶다는 그에게 ‘창의인재 멘토’는 어쩌면 숙명인 것처럼 보였다. 지난 6월, ‘행복한 영화판’을 꿈꾸는 그의 사무실에 서로 다른 세 명의 ‘후배’가 들어왔다. 연기학원에서 근무하던 김태우, 연극 · 영화 · 언론 등 진로를 고민하던 남효식, 연극영화과 졸업반인 정민주가 창의교육생으로서 영화판에 첫 발을 들인 것이다.


세 명 모두 발대식 직후 영화 <선샤인>의 현장에 투입됐다가, 지금은 사무실로 돌아와 한 숨 돌리고 있다고. 이들이 돌아온 틈을 타 사무실을 찾았다.

 


전윤찬 피디님이 직접 창의교육생 선발 면접도 보셨고, 팀을 꾸릴 때도 멘토와 창의교육생 각자의 선호도가 반영됐다고 들었어요.


전PD: 이 세 명은 다 저를 1지망으로 쓴 친구들이에요. 뽑는 기준은 확고했습니다. 첫째가 나를 1지망으로 쓴 친구들, 그 다음이 현장 경험이 없는 친구들을 뽑자는 것이었어요. 이 사업의 취지 상, 제 역할이 사회 초년생인 친구들을 영화 분야에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열정도 선발 기준 중 하나였어요.

 


그럼 창의교육생 분들이 전윤찬 피디님을 1지망으로 쓰신 게 이 팀이 꾸려지는 데 결정적이었네요. 각각 전 피디님을 지망하신 이유는 뭔가요?


민주: <피에타>가 결정적이었죠. 지망을 쓰면서 피디님의 예전 작품들을 검색해 봤었는데요. 학교 다닐 때 연극영화과 수업에서 <피에타>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관심이 갔어요. 감독님들이야 워낙 유명하시지만 제작자이신 전윤찬 피디님도 궁금하더라고요. 그런 피디님께 배워보고 싶었어요.

태우: 전부터 영화 제작, 기획에 관심이 많았어요. 전윤찬 피디님은 저예산 영화를 하시는 분이니까 현장에 대한 노하우가 많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한 달 동안 현장에 있으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효식: 저는 ‘제대로 배울 수 있는가’만 생각했었어요. 여러 멘토 분들 중에서 전 피디님께 제일 먼저 눈이 갔어요.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PD: 이건 제 자랑이지만, 제 이름을 쓴 지원자가 가장 많았어요 (웃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택되신 분들이네요.


태우: 굉장한 영광이죠 (웃음).

 

 

 



1기 때는 창의교육생 세 분이 다 남자였어요. 이번 2기에도 세 분 중 두 분이 남자인데요. PGK 교육생 전체적으로는 여자가 많은 편인데, 피디님이 남자 교육생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전PD: 저예산 영화 현장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많이 힘들어요. 솔직히 남자들은 단순해서 금방 잊어버리기도 하고 설득해서 끌고 갈 수도 있어요. 반면에 여자들은 자기가 하고자 했던 분야가 아니면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잖아요.


민주: 저는 단순합니다, 하하.

전PD: 선발되자마자 바로 제작 스태프 일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자 교육생을 뽑기는 힘들었어요. 사실 버티지 못하고 금방 나가는 경우도 많죠. 전 일단 현장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 기획이나 여러 가지 교육에 들어가니까요. 교육이 끝나면 영화사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하고요.

 


전윤찬 피디님 하면 저예산 영화입니다. 멘토링에서도 중요한 키워드이고요.


전PD: 저예산 영화라는 건 제 생존 전략이에요. 좁은 길에 많은 사람이 서 있으면 통과하기 힘들다는 통신사 광고도 있잖아요. 마찬가지거든요. 상업 영화처럼 소위 ‘돈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리게 돼요. 저예산은 소규모이지만 경쟁자가 적죠. 내가 특출 나게 하면 되지 않을까, 나의 길을 확실하게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선택했던 부분이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저예산 영화를 선택한 부분도 있어요. 첫 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이 5천 3백만 원으로 찍은 영화에요. 처음부터 저예산 영화를 찍다보니까 영화를 독하게 배웠어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쥐는 것부터 배운 거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찍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 전략이 생기더라고요. 나만의 노하우를 갖게 됐어요.


그리고 남들은 ‘독립영화’라고도 얘기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독립영화라는 건 관객이나 돈에 상관없이 자유로워야 하는 건데, 그런 영화가 얼마나 있겠어요. 어차피 관객에게 보여야 한다면 다 상업영화거든요. 돈이 많이 들고 적게 들고의 차이일 뿐인 것이죠.

 


멘토와 창의교육생이 내년 2월까지 하게 될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전PD: 개인 프로젝트는 없고 세 명 모두 공통교육을 받아요. 지금 제가 기획하고 있는 작품들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선 영화 <선샤인>과 <49년>에서 제작 스태프로 일하게 돼요. 오락성보다는, 시대와 사회에 대해 말하는 영화들이에요. 제가 추구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또 미완성이지만 시나리오는 나온 휴먼 코미디 <입봉기>나 <외계인 공주 서울 침공기>, 아이템만 나온 로맨틱 코미디 <변호사 황진희>를 같이 상의하고 기획하게 되죠.


앞으로 저예산부터 상업영화까지, 기획, 제작, 개봉, 후반 작업들을 모두 가르쳐 주려고 해요. 기본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차근차근 가야지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거든요. 기초를 잘 쌓아야만 나중에 홀로서기를 할 때도 흔들리지 않죠. 기본을 탄탄하게 하는 것, 스스로가 현장에서 경험하고 체득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배우는 법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특히 강조하는 점은?


전PD: 작품에 임하기 전에 항상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그래서 그 작품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납득시키라고 말해줬어요. 그게 있어야만 되거든요.


현장에서 ‘내 작품이다’라는 생각으로 작품에 한 발 더 다가가라는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손에서 시나리오를 놓지 말고, 일들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꼭 보고 배우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이번 <선샤인> 현장에서는, 물론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본인들이 잘 따라오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어요. 대견스럽죠. ‘얘들은 대목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해요.

 


예전부터 프로듀서로서 ‘이 작품은 내 작품이다’, ‘공동의 작품이다’와 같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전PD: 특히 저예산 영화 같은 경우는 ‘내 작품’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현장이 정말 힘들어져요. ‘내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요. 상업영화에서는 돈이라도 많이 받겠지만, 여기는 돈도 안 받고 먹을 것도 별로 없고 힘들긴 두세 배는 더 힘들거든요. 그런 힘든 점들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작품이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어떤 영화든지 그런 기운들이 모여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번 <선샤인>에서도 자기 일처럼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이 친구들. 덕분에 제작 규모에 비해서 작품이 잘 나왔어요.

 


현장에 있으면서 멘토와 창의교육생들 사이에 신뢰가 많이 쌓인 것 같아요.


전PD: 농담도 하고, 오빠, 형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려고 하죠. 각자의 인생에 대해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는 없거든요. 멘토는 선배로서 조언을 더 해 주고, 이 분야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직업적인 부분뿐 아니라 인생에 관해서도요. 얘들도 잘 따라오고 있으니까 기분 좋죠. 다들 기본을 잘 지키려는 애들이에요. 잘 뽑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전윤찬 피디는 창의교육생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커피가 담긴 그의 머그잔에는 ‘원석의 빛을 모아 세상을 밝히는 영화, 전윤찬’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전윤찬 피디는 그와 작업한 스태프들이 더 큰 현장으로 스카우트되어 가는 것이 “희한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아마 이 애들도 다른 데 가서 ‘전윤찬 피디하고 작업했다’라고 하면 무시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워낙 힘들게 작업하고, 어떤 마인드를 심어주는지 다들 아니까요.”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던 ‘원석’들이 지금은 전윤찬 피디와 한 팀이 되어 다듬어지는 중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경험을 인정받는 팀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만큼 고생하며 배우고 있을 교육생들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난생 처음 참여하게 된 영화 현장에서의 에피소드와 팀에 대한 서로의 생각까지,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봤다.

 

 

 

 

 

(다음 편에 계속)

 

 

한국경제신문 글 정주원 기자│사진 김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