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큐의 열정을 느끼다, 다큐피칭포럼2013
피칭(pitching), 야구에서 투수가 타자를 향하여 공을 던지는 일.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의교육생들에게는 이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작가, 감독, 프로듀서 등 콘텐츠 제작자가 투자자, 배급사 등에게 기획개발 중인 작품을 짜임새 있게 공개하는 일, 그리하여 작품에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피칭입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3~4년 새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여느 영화제나 포럼 등에서 신선하고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투자 유치 방식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는 이때, 제1회 ‘다큐멘터리 피칭포럼 2013’(이하 다큐피칭포럼)이 인천에서 열렸습니다. 올해 예정된 다큐멘터리 피칭행사로는 마지막인 만큼 경쟁작들도, 참석자들도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신청을 받아 참관자를 모집했지만 작품 관계자나 업계, 언론 관계자 등으로 제한돼 참석하지 못한 교육생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다큐멘터리 펀딩의 신개념 플랫폼’이라는 문구답게 성공적으로 첫 발을 디딘 다큐피칭포럼 2013 소식을 대신 전해드립니다.
'다큐피칭포럼 2013'에서는…
다큐피칭포럼에는 여덟 작품이 결선에 올라 전문 패널들과 참관자들 앞에서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ㄷ(디귿)’자로 배열된 무대 위 책상에 방송사, 투자사, 극장, 제작 및 배급사 등 각 분야의 패널 11명이 자리하고, 그 앞에서 발표자가 피칭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의 피칭 뒤에는 10분 동안 ‘매칭 매니저’ 강석필 감독(인천영상위 사무국장)이 작품과 피칭에 대한 패널들의 코멘트를 이끌어내, 발표자와 패널들 사이에 소통이 이뤄지게끔 했습니다. 참관자들은 포럼장 뒤에서 혹은 포럼장 옆의 생중계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흥미를 돋우는 트레일러가 상영되면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어지는 매칭 시간에는 전문가들의 뼈 있는 코멘트가 나왔습니다. 대중성 등을 우선시하는 방송계와 예술성과 티켓파워 등을 우선시하는 영화계의 관점이 다르다 보니, 한 작품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옵니다. 작품에 대한 패널들의 기대와 격려는 물론 우려와 충고도 전해지는데, 단순히 ‘최고’를 정하려는 게 아니라 좋은 다큐멘터리 작품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입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하신 진모영 감독님(방송콘텐츠진흥재단 멘토)은 “그동안 한국에서의 피칭 행사들은 ‘1등 선발대회’ 같은 느낌이 강했고, 승자독식이어서 다른 작품들에게는 주어지는 게 없었다. 이번 행사는 ‘각 분야의 관계자들과의 소통’이라는 피칭의 중요한 의의를 잘 발전시킨 것 같다”고 보셨습니다.
(재)SJM문화재단, (재)방송콘텐츠진흐재단,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사)인천광영시영상위원회가 공동주최, 주관한 다큐멘터리 피칭포럼 2013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12월 6일, 7일 양일간 열렸다.
다큐피칭포럼에서는 그간 다른 영화제 피칭행사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1등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다양한 현물 지원과 제작지원금를 시상했습니다. 이를 테면 자막, 사운드, 편집 등 후반 작업을 지원한다든가, 특정 상영관 상영을 지원한다든가 하는 것이 현물 지원입니다. 그 외에도 SJM문화재단에서는 총 8천만 원의 상금을, 방송콘텐츠진흥재단에서는 3천만 원의 상금을 지급하는 등 영화, 방송, 투자사, 배급사 각각이 다양한 지원을 약속한 풍성한 포럼이었습니다.
반가운 얼굴들과 수상작들
다큐피칭포럼 최종 본선에 오른 여덟 작품은 총 45편의 프로젝트 중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해 탁월한 기획력과 배급 가능성, 제작 현실성 등을 인정받은 작품들입니다. 베테랑 작가의 작품에서부터 신인 감독의 데뷔작까지, 소재와 접근도 모두 색달랐는데요. 그 중에는 특히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멘토님들의 작품이 눈에 띕니다. 김옥영 작가님(방송작가협회 멘토)의 <길 위의 피아노>(연출 최정민)와 박혁지 감독님(방송콘텐츠진흥재단 멘토)의 <춘희막이>(연출 박혁지)입니다.
<길 위의 피아노>는 김옥영 작가님이 대표로 있는 '스토리 온'이 제작을 맡은 작품입니다. 한국사회에서 피아노가 갖는 ‘사회적 욕망의 투사’라는 의미를 전제로, 무작위의 공간에 세워둔 피아노에 다가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무작위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리얼리티 관찰 다큐’입니다. 김옥영 작가님은 “아직까지 우리 다큐계는 제작방법론의 다양성이 빈곤한데, ‘방법론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제 작품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길 위의 피아노>는 신선한 시도로 기대를 받으며, 1천만 원의 제작지원금을 수상했습니다.
<춘희막이>는 박혁지 감독님이 연출하고, 한경수 감독님(방송콘텐츠진흥재단 멘토)이 프로듀싱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이미 암스테르담 국제다큐영화제(IDFA)에서도 큰 관심을 받은 작품인데요. 남편이 죽은 뒤에도 35년 동안 후처 막이 할머니를 돌봐준 본처 춘희 할머니, 두 여인의 동거를 담은 휴먼 다큐입니다. 방콘진의 한상호, 김희종 교육생이 조감독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춘희막이>는 매칭 타임 동안 패널들과 참관객들에게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결과적으로 총 7천만 원의 지원금과 영어자막 제작지원, 후반작업 지원 등의 현물 지원까지 받는 좋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패널로 참석한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의 권진희 팀장님은 “8개 작품들은 이번에 지원작으로 선정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언젠가는 극장이나 TV에서 보게 될 수준 높은 작품들이다”라며 “면접, 서류심사에도 참여했는데 심사가 정말 어려웠다. 그만큼 모두 쟁쟁한 작품들이었고, 막상막하였다”라는 말을 전하며 피칭포럼 지원작들의 높은 수준과 뜨거운 열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다큐피칭포럼 결선에 오른 여덟 작품에 대한 정보와 트레일러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funding21.com/event/docu/
<길 위의 피아노>, <레드마리아 2>, <림보에서 보낸 한 철>, <반짝이는 박수 소리>, <살아남은 아이들>, <조국땅을 떠나며>, <진경산수, 임권택>, <춘희막이>
무궁한 발전이 기대되는 한국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제작과 관련한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행사였기에, 멘토님들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예심에 참여한 이승준 감독님(방콘진), 독립PD협회 대표이신 이동기 감독님(방콘진)도 참석하셨고요. 공식적인 행사의 높은 자리에서 뵙는 멘토님들은 더욱 반가웠는데요.
사진: 포럼장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 나누고 있는 방송작가협회 김옥영 멘토님과 방송콘텐츠진흥재단 한상호 교육생
황윤 감독님(방콘진)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최근에 어떤 다큐멘터리들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동료 감독들의 작품과 동향을 보기 위한 좋은 자리라서 오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황 감독님의 멘티인 박명진 교육생은“개인 작품을 시작하는 단계인데, 배울 게 많았다”고 소감을 전해주셨습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 ‘선수들만 모였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춘희막이>의 조감독이기도 한 방콘진 한상호 교육생은 “2월에 저희끼리 하는 피칭이 있는데, 오늘 많이 배웠다. 트레일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을 얻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모영 감독님(방콘진)은 이번 행사에 대해 “다양한 관계자들이 피칭이 끝나고 1:1 미팅을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준 것, 여러 번의 미팅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정말 좋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는데요. 진 감독님의 말처럼 국내에서는 그간 EBS국제다큐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피칭 행사가 마련돼 있었지만 투자사 및 제작사와 작품을 포괄적으로, 완전히 이어주는 플랫폼은 이번 다큐피칭포럼이 새롭게 시도한 것입니다.
김옥영 작가님(방송작가협회)도 “여태까지 우리나에서 다큐멘터리는 '상업적이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영화에 비해 투자나 지원을 받아 개봉하기까지가 지난했다”고 설명하시며, “다큐멘터리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산업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번 행사가 그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인 감독의 패기 넘치는 피칭부터 노련한 감독들의 감동적인 피칭과 업계 ‘선수’들의 예리한 코멘트 등이 오갔던 다큐멘터리 피칭포럼 2013. 피칭행사 전후로 마련된 1:1 미팅, 리셉션과 네트워크 파티까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다양한 펀드, 민간투자자 등 산업 관계자들과 방송, 영화, 민간재단, 언론, 학계 등 다큐멘터리의 발전을 고민하는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한국 다큐멘터리의 가능성과 활발한 제작을 위한 좋은 풍토를 만든 자리였습니다.
한국경제신문
글 정주원 | 사진 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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