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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지/창의인재동반사업

시나리오로 배우를 '꼬시는' 방법은?



PGK 크리톡 5강, 시나리오로 배우를 '꼬시는' 방법은?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메가폰을 잡는 감독, 영화 제작의 모든 상황을 관리하는 프로듀서…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팀이 어떻게 꾸려지는가도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특히 이야기와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가 캐스팅돼 연기한다면, 제작진은 물론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이게도 큰 즐거움이 되겠지요.

 

그래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의 다섯 번째 크리톡은 ‘배우와 시나리오’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BH엔터테인먼트의 손석우 대표가 배우들의 시나리오 선택 기준과 한국 매니지먼트(연예기획) 산업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15년 차 매니저이자, 영화배우 이병헌과 설립한 BH엔터의 손 대표님 이야기라 더욱 실질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기사에 다 싣지 못할 정도로 신랄한 이야기들도 오갔는데요.

 

 사진: 이병헌, 고수, 배수빈, 진구, 한가인, 한효주, 한지민 등이 소속된 BH엔터테인먼트. 비교적 소수의 배우들을 관리하며, 다양한 해외 에이전시와의 네트워크로도 정평이 나 있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강태공’이 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바라본 한국 영화의 미래는? ‘물고기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한 세 시간의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물고기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물고기를 잘 잡는다”

 

시나리오가 배우의 손에 닿기까지의 과정을 보려면 먼저 매니지먼트 사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손석우 대표님은 매니지먼트란 “배우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단순히 배우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서 나아갈 길을 닦아주는 것이 진정한 연예기획사의 역할이라는 게 느껴지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BH엔터의 사례를 보면, 기획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배우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그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손석우 대표님은 “10년을 내다보고 이 배우가 어떤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지 방향성과 목적을 정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운다”며 “무엇보다 소속 배우나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BH엔터에 2009년부터 둥지를 튼 배우 한효주 씨에 대해서도 이미지 전략이 세워졌습니다. 우선 한효주 씨는 주연을 맡아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생긴 '굳센 캔디' 이미지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손 대표님은 "자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지켜보니, 건강하고 밝으면서도 외유내강 성격이고 우아한 느낌이 드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회상하셨습니다. 이후 배우 한효주 씨는 연기적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도록 상업영화에 집중해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습니다. 강렬한 이미지보다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영화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연예기획사의 역할이 이렇게 뚜렷하다보니, 시나리오는 먼저 팀장, 실장, 대표 등 회사의 손을 거칩니다. 유명 배우에게 개인적으로 전해지는 작품만 해도 150여 편이 된다는데, 여러 루트를 거쳐 들어오는 400여 편의 시나리오를 배우가 다 직접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기획사에 의해 선별된 시나리오가 관련 실무자와 배우에게 전달되는 게 일반적인 과정입니다.

 

최종적인 선택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시나리오의 플롯과 주제 등 내러티브의 힘, 캐릭터에 대한 배우 적합성, 감독의 연출력, 프로듀서의 제작능력, 그 외 배급사, 투자사, 개봉 시기 등등이 고려됩니다. 훌륭한 시나리오, 감독님, 제작사와 함께 할 때는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판단을 내려 캐스팅에 응합니다. 그 외에, 배우로서의 전략을 세워 타이밍에 맞춰서 혹은 감독과의 친분, 경제적 이유 등으로 상대적 · 주관적인 판단을 내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 대표님은 “배우가 그 작품을 할지 말지는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이 덮일 때 결정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시나리오’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는 겁니다.

 

 

선택 받는 시나리오? 400 대 1의 경쟁률

 

한 해에 연예기획사로 들어오는 시나리오만 400여 권, 책상 위에는 1년 365일 내내 읽어내야 할 만큼 늘 시나리오 수십 권이 쌓여있다고 합니다. 손 대표님은 ‘시나리오를 보긴 보나? 왜 이렇게 답이 늦나?’ 하는 항간의 궁금증에 대해 “먼저 온 것들을 읽고 답변을 하다보면 답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셨는데요.

 

다른 말로 하면, 영화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400여 권의 다른 시나리오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만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손석우 대표님은 “한국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나오는 만큼, 시나리오를 제안할 때부터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하십니다. 시나리오 제안에도 ‘티저 예고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어렵게 작업한 시나리오인 만큼 자신의 콘텐츠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시며, 상대방에게 시나리오를 어떻게 제안하느냐가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나리오의 티저 예고편은 이해를 돕는 장치를 말합니다. 예컨대 콘티, 레퍼런스 클립, 비쥬얼 컨셉 이미지, 프리비쥬얼 영상이 글로 쓰인 시나리오 책과 함께 제시된다면 작품을 선택하는 연예기획사와 배우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납득하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특히 최근 쏟아져 나오는 SF, 좀비, 스릴러 추격 영화 등 다양한 장르 영화들에는 ‘이게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인데, 시나리오가 시각적인 자료와 함께 제시되면 신뢰와 호감이 더욱 상승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시나리오 제안 시에는 기본적인 매너가 필요합니다. “매년시나리오 수백 권을 읽어낸다”는 기획사 관계자들이기 때문에, 내 시나리오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후킹(hooking)’이 필요한 것입니다. 손석우 대표님은 최근 시나리오를 받았던 실제 경험을 설명하며 이를 강조하셨는데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다짜고짜 시나리오를 들이밀고 독촉하는 제작자보다는, 진정성 있게 철저한 준비를 거쳐 전달된 시나리오에 호감이 가는 것이 인지사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영화산업의 개척 분야, 객관적인 프로듀서가 필요하다

 

PGK 창의인재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크리톡이 질 좋은 강의로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 크리톡에 이어 이번 강의도PGK 소속 영화 프로듀서들이 청강하셨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 손석우 대표님은 앞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할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역설하셨습니다.

 

손 대표님은 “작가나 감독에 대한 매니지먼트도 필요하다”며, “그 역할은 프로듀서가 해줘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작가, 감독, 배우 등이 감성적인 작업을 주로 한다면, 연예기획사나 프로듀서는 이성적인 작업을 주로 한다는 점에서 “매니저와 프로듀서는 동병상련”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요. 프로듀서는 단순히 현장 관리자의 역할만이 아니라, 영화가 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객관적으로 충고하는 역할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감독과 작가에게 객관성의 잣대를 댈 수 있는 건 프로듀서뿐"이며, 프로듀서의 이런 역할에 따라 작가, 감독의 역량이나 작품의 만듦새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손석우 대표님은 "우리나라 영화 산업이 많이 발전해 왔지만, 앞으로도 더 많이 발전하고 전문화돼야 할 분야가 프로듀서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셨습니다. 특히 "훌륭한 작품 뒤에는 훌륭한 감독과 작가가 있고, 그 뒤에는 훌륭한 프로듀서가 있다"는 말에서, 손 대표님이 주장하신 이야기들이 크게 와 닿았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 감독, 프로듀서와 같이 연출과 제작 분야에만 몰두하던 교육생들에게는 이번 강의가 배우들의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는 색다른 강의가 되었을 텐데요. 감독 지망인 안주영 교육생은 “매니지먼트 산업이 지금 영화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대표님의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강의 내용이 재미있었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작가 지망인 조현경 교육생은 “피상적으로만 배우들을 돌보는 수준이 아니라, 배우의 캐릭터를 분석해서 방향성을 정하고, 체계적으로 미래 계획까지 짜서 매니지먼트가 진행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손석우 대표님이 ‘배우의 노출’에 대해 언급한 것에 대해 “매니지먼트에서 배우의 노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니까 앞으로 그런 장르의 영화를 쓰고 만드는 게 힘들어질 것 같아서 아쉽다”는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느낌도 전했습니다.

 

영화 제작에 있어, 배우의 캐스팅은 매우 중요합니다. 배우가 가진 역량과 인기가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한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충무로에 시나리오가 돌고, ‘누가 배역에 내정됐다더라’, ‘원래는A가 거론됐으나 결국 B가 캐스팅돼 대박이 났다더라’ 하는 소문은 어제 오늘 듣는 것도 아니지요. 배우와 연예기획사가 작가 외 감독, 프로듀서에 이어 외부적인 관점에서 시나리오를 접하는 가장 첫 번째 독자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효과적인 캐스팅 전략도 짜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좋은 시나리오, 즉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가장 결정적이겠지만요. 손 대표님은 "작품과 배우의 만남에는 운명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도 하시네요.

 

 

한국경제신문

글, 사진 | 정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