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EIDF 2013에서 총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페스티벌 패스를 미리 구매해둬 시간만 맞으면 보고 싶은 만큼의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상당히 많은 작품들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하나 헤매고 있었다.
그때 '페스티벌 초이스' 열한 작품의 설명을 듣던 중, 종군기자 팀 헤더링톤의 인생과 작업을 담았다는 <전선으로 가는 길>이 귀에 꽂혔다. 다른 이유보다, 종군 사진기자라는 한 줄의 설명이 나에게 로버트 카파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많이 공부했지만 80여년 전의 시대를 살았던 카파의 인생, 말로만 대단하다 존경스럽다라고 해왔지만 실제로는 공감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그의 인생을 이 다큐에서 조금이나마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아는 카파의 삶과 너무나 닮은 구석이 많아 놀라웠다.
그리고 그런 비교를 넘어서,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전쟁터의 한 사람으로서 현장에 녹아들었던, 인도주의자humanitarian으로서의 팀의 삶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인간적인 매력도 넘쳤던 사람이다. 보고 나서 경외심이 들고 사랑하게 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또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이 EIDF 2013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 첫 장면이 2011년, 리비아에서 팀과 동료들이 자동차를 타고 엉망이 된 도시를 달리는 장면이다. 팀이 직접 찍은 영상이다. 거기서 팀은 "Which way is the front line from here?"라며 팀이 곧 전선으로 갈 것임을 암시한다. 이때는 몰랐다. 팀이 2011년 리비아 내전 전선에서 카다피 정부군이 설치한 폭탄 파편에 맞아 끝내 숨졌다는 것을.
영화에서는 팀의 아버지, 어머니인 Hetherington 부부, 팀과 함께 작업했던 저널리스트나 동료 사진가들, 레스트레포를 함께 제작했고 이 영화의 감독인 세바스찬 융거, 사랑했던 여인 크리스 등이 팀에 대해 추억하고 증언한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건 팀의 생생한 인터뷰가 곳곳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미 동시대 종군사진작가로서 유명했고, 특히 전쟁 다큐멘터리 '레스트레포'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유명했기 때문에 팀을 인터뷰이로 한 자료도 많았을 것이고. 아마도 세바스찬 융거가 팀을 인터뷰이로 한 영상들을 많이 찍어뒀던 것 같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가 참 좋았고, 와닿았다. 혹은 팀이 직접 촬영한 영상들이 그 상황을 무엇보다 잘 설명해주었다.
내가 잘 아는 종군 사진기자가 카파뿐이어서, 카파의 것들과 많이 비교하게 되는데.. "Robert Capa: Love and War"(2003)도 카파의 삶과 사진,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도 과거에 카파를 알았던 이들이 등장해 많은 증언을 한다. 하지만 이미 카파 사후 50년이었던 시기여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이다.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긴 하지만, 자료 화면이나 이야기 방식의 생생함은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기억나는 몇몇 장면들
1. 팀은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카디프 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하게 되는데... 처음으로 라이베리아에 가서 'healing sports'를 테마로, 전쟁의 아픔 메타포를 심은 작품 촬영을 하고. 전쟁 중에 맹인이 된 이들의 보호소 같은 곳에서 인물 사진도 찍고 하게 된다.
팀이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데(정확히 어떤 테마였던가 기억이 안나네),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가만히 feature 사진을 찍는 거다. 아마 태어나서 카메라를 처음 본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찍기 전에, 아이가 먼저 찍게 한다. 자신이 의자에 앉아서는 아이에게 뷰파인더를 통해 자신을 보게 하고, 이제 너가 여기에 그렇게 앉는 거야 라고 설명하는 거다.
2. 어느 전쟁인데, 의료소에 medic이 단 한 명 뿐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반군 대장? 격인 사람이 이 자가 스파이라며, 의무관을 몰아붙였다. 팀과 같이 있던 전쟁 경험이 많은 저널리스트는 "곧 공개처형이 일어나겠구나"라고 판단하고는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준비했단다. 와이드 앵글로 샷을 바꾸고.. 그런데 그때 팀이, 반군 대장의 총이 들린 손을 잡고 협상을 벌였다. 이 사람은 여기 유일한 의무관이라고, 이 자가 죽으면 이 많은 환자들을 돌볼 사람이 없다고. 반군은 수긍했고, medic은 살았으며, 다시 환자들을 돌봤다. 이 에피소드는, 팀이 단순한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인도주의자라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3. 레스트레포, 미군들과 1년간 생활하며 찍은 사진들 중 Sleeping Soldiers.
미국 정부나 군 당국이 원했던 사진들은 당연히 위풍당당하고 호기로운 군인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열심히 테러와 싸우고 있다는, 안보 의식을 드높여줄 그런 사진. 하지만 팀의 이 시리즈는 아기 같은 병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아기 병사?!) 전쟁 다큐를 찍으러 들어간 부대였지만 1년 365일 내내 전투가 있지는 않다. 이때가 그런 시기여서 병사들이나 팀, 세바스찬이나 늘어져 있는 시기였는데, 할 일 없이 느슨해진 세바스찬과 달리 팀은 이 늘어져 있는, 꿀잠 자는 병사들을 찍으러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그래. 이들도 고작 20 어린 청년들에 불과하다. 참혹한 현장이라 간과하고 마는 사실. 카파가 2차세계대전에서 찍었던 참호에서 졸고 있는 병사의 사진도 떠오르고.
4. 레스트레포에서 동료 병사가 죽었을 때.
그리고 팀이 목숨을 일었을 때.
우리가 모르고 있는 전쟁의 진실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내 동료가 죽는다는 확신에 있다고.
팀이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항상 찾아내고 싶어했던 진실, 병사들이 어떤 태도로 전쟁을 대하고 전쟁에 임하는가. 그들은 미디어에서 본, 동료들에게서 본 남성적인 군인의 모습을 체화시키는가 아니면 전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하는 것.
그 외에도, 그가 뷰파인더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식의 롤라이 카메라를 썼던 이유: 키가 큰 외국인인 그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피사체에게 위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카메라를 몸통으로 낮춰서 고개를 숙이고 사진을 찍게 되면 그런 게 덜하다
같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40년의 인생 뒤에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도 카파를 떠올리게 했고
항상 현장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기분좋게 해주는 그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The Greatest War Photographer와 비슷했다.
어쩌면 많은 사진가들의, 많은 인도주의자들의 공통된 특성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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